들어가며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편이다. 그중에서도 책은 이상할 정도로 버리기 어렵다. 그래서 책은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읽은 다음 조금씩 치우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를 글로 써 보았다.
내다 팔기
나에게 책을 버리는 방법 중 심리적으로 가장 쉬운 것은 내다 팔기이다. 나는 책을 치우고 상대는 원하던 책을 얻는 승-승 게임이다. 사회에게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돈을 주고서라도 책을 얻고 싶어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므로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
비싸게
인기가 좋은 책은 비교적 비싼 가격에도 팔린다. 잘하면 책값의 절반 이상도 받을 수 있는데, 오래된 책이나 인기가 없는 책은 어쩔 수 없이 싸게 팔리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싸게
성공할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다. 새 책이야 도서정가제 덕분에 정가로 팔리겠지만, 수요와 공급이 만나지 못하는 책이라면 눈물을 머금고 싸게 팔아야만 한다. 심지어 그 수요라는 것은 책을 공짜로 준대도 가져가지 않을 만큼 내려가기도 하는 것이다.
인터넷 중고서점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헐값에 책을 팔려고 하는데, 그들과 경쟁하여서는 본전을 찾기 힘들다. 당근마켓 등 주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도록 하자.
누군가에게 주기
책을 원하는 누군가에게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견 내다 파는 것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책을 주는 것에 대한 금전적인 대가가 전혀 없으므로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친구에게
과연 친구는 내가 더 이상 갖고 싶어하지 않는 책을 필요로 할까? 사실 아직 물어본 적은 없어서 잘 모른다. 언젠가 친구와 책 교환식을 열고 싶다.
개인에게
책이 아니더라도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관한 괴담은 인터넷만 봐도 알 수 있다.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적은 값이더라도 꼭 돈을 받고 팔도록 하자.
도서관에게
집 근처 도서관에서는 최근 5년 이내에 간행된 책의 기증을 받고 있다. 컴퓨터 또는 법률 관련 책은 최근 2년 간행물을 받는다. 공공재로써 적합한 책을 기증받는 것이 목적이므로 만화책이나 잡지, 신문 등은 받지 않는다.
도서관에서 내 책에 관심만 있다면, 그리고 책이 오래되지 않았다면 이 방법이 가장 빠르면서도 심리적 장벽은 적당히 낮은 방법일 것이다.
내다 버리기
가장 어려운 것이 내다 버리기라고 생각한다. 이제 책 한 권은 평생 누군가에게 읽힐 가능성이 사라진다. 책이 버려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한편 남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훼손되어 가치를 잃어버린 책들도 있다. 나에게도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면 책을 버려야 한다.
제목이 무색하게도 아직 책을 버려본 적은 없다. 이하는 책을 버리는 것에 관한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길바닥으로
아무리 책이 나에게 쓸모 없고 누군가에겐 쓸모 있다 하더라도 길바닥에 책을 버려 놓는 것은 미관상 좋지 않을 뿐더러 법에도 저촉된다. 길바닥에 버릴 바에는 책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 주거나, 차라리 쓰레기통으로 버려야 한다.
쓰레기통으로
종이가 더러워지지 않도록 따로 모아서 분리배출하도록 하자. 재활용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책을 떠나보내는 것은 슬프다. 버리기 전에 열심히 읽어 주면 책에게 위로가 될까 상상한다.
불구덩이로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나은 책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내가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곤란한 책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이 불구덩이이다. 종이로 된 책은 불구덩이에 넣으면 그것이 원래 책이었다는 것조차 알아볼 수 없도록 물성이 변한다. 그런 책이 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위해서.
물론 불구덩이를 함부로 다루면 화재 위험이 있다. 꼭 책을 불구덩이에 던져야겠다면, 각오를 하고 불을 전문적으로 다룬 경험이 긴 사람을 찾도록 하자.
마치며
나는 책을 얻는 방법만을 생각했었다. 책은 많이 읽을수록 좋고, 책이 많으면 멋지다. 그런 생각에 갇혀 책을 버리는 방법에 관해서는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다.
나는 책을 잘 정리하고 있는가? 책을 버릴 수 있는 방법을 구구절절 써 보았지만, 늘 방법을 아는 것보다는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어떻게 작별을 결심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나는 책을 잘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책을 잘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이든 잘 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책 버리기를 오늘도 연습한다.